가마터
양구백자가마터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즐겁고 유익한 시간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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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룡리 9호 요지
1. 성격 : 17~18세기2. 위치 : 38˚11.39N, 127˚55.20E방산면에서 오미령을 넘으면서 오미령 정상부에서 500m 지점에 오른쪽으로 첫 골짜기가 나오는데 도로에서 골짜기로 800여m되는 지점에 가마터가 있다. 지번상으로는 양구읍 상무룡리 산165-1번지에 해당한다.3. 현상 : 현재는 숲과 잡목이 우거졌으나 20여년 전만해도 火田으로 경작되었던 곳이다. 계곡을 끼고 있어 도편이 계곡리 따라 흘러내렸으며 가마터 부근은 하절기 수해로 곳곳이 패여있고 그 사이로 도편들이 흩어져 있다.4. 유물 : 주로 오목굽에 모래받침 백자류이나,죽절굽에 짙은 녹색의 유약이 입혀진 대형기 편도 수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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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룡리 8호 요지
1. 성격 : 17~18세기 백자2. 위치 : 38˚12.16N, 127˚56.88E방산에서 상무룡리 선착장으로 가는 도로 초입의 상무룡리7호 못미쳐 오른편 계곡. 계곡으로 약5~10분 걸어서 현재 황기밭으로 경작되고 있는곳. 지번상으로 상무룡리19전,20전 일대이다.3. 현상 : 계곡의 방향이 동남쪽으로 트여 있고 경사가 완만하여 매우 아늑한 지역이다. 현재는 일대가 모두 황기으로 경작되고 있는 곳으로 아랫부분에서 도편이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경작지 이에도 군데군데 주택의 초석으로 사용된 듯한 돌무더기들이 있어서 주거지로 인해 가마퇴적의 일부는 이미 훼손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4. 유물 : 주로 오목굽에 모래받침 백자류가 철화백자와 함께 동반되며,시기가 늦은 것으로 보이는 청화백자,도기류도 주변에서 함께 수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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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룡리 7호 요지
1. 성격 : 19~20세기 백자2. 위치 : 38˚09.79N,127˚55.64E방산방면 상무룡리 입구쪽에서 도로를 따라 들어가다가 왼편으로 버섯모양의 지붕을 한새로 지은 주택이 나오는데 그 집의 왼편과 집 앞 도로 맞은편 사면 일대. 상무룡1리27번지에 해당한다.3. 현상 : 도로를 개설하면서 자연구릉은 이미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도로 우측의 구릉 단면과 맞은편 주택 주변에 많은 양의 파편이 노풀되어 있다. 그러나 주택 주변에서 바견되는 파편은 주택 축조시 맞은편 언덕의 흙을 일부 파내어 축대를 축조하는 과정에서 흘러든 것으로 보인다.4. 유물 : 무문의 백자 발,완,잔,접시류가 주종을 이룬다. 특히 굽을 각지게 깍은 제기류가 다량으로 수집된다. 한편 도석을 분쇄하는데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갈돌도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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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룡리 6호 요지
1. 성격 : 19~20세기 백자2. 위치 : 38˚10.13N, 127˚56.11E상무룡리 5호에서 방산방면 입구쪽으로 나오다가 비포장도로가 나오는데 그 도로 아래 뒷편에서 모두 가마폐기물과 백자편이 수습된다. 주변에 표적이나 기준이 될만한 것이없다. 지번상으로 상무룡리26에 해당한다.3. 현상 : 상무룡리5호와 마찬가지로 현재 난 도로로 인해 구릉의 중간이 잘려나갔으며 훼손이 심하다.도로 중간에 소토와 도편들이 소량 있다. 도로 아래로는 경작지가 있고 경작지 아래로는 계곡이 흐르고 있는 지형이다.4. 유물 : 모래받침에 굽 안쪽을 깊게 깎아낸 백자가 주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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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룡리 5호 요지
1. 성격 : 19~20세기 백자2. 위치 : 38˚09.04N, 127˚55.22E방산 방면 상무룡리 입구에서 상무룡1리 방면으로 가다가 도로 오른편에 컨테이너 주택이 나오고 그 주택을 기준으로 도로 아래쪽,지번상으로는 278-1유이다.3. 현상 : 도로가 개설되면서 능선 위쪽의 흙과 축대를 만들기 위한 석재가 10m아래까지 쌓여 있고 그 맨 아래쪽에서 도편과 가마벽편 등이 수거되었다. 또 경사면 아라쪽은 논으로 경작되고 있어서 유적이 훼손되었거나 흙에 매몰괴었을 것으로 본다.4. 유물 : 유 ● 태가 정선된 무문의 경질 백자 발,접시류가 주류를 이룸. 모래받침으로 번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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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룡리 4호 요지
1. 성격 : 조선후기 옹기가마2. 위치 : 38˚08.69N, 127˚54.99E상무룡1리 방산골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들어간곳.3. 현상 : 현재는 가마 퇴적은 거의 훼손되었으며 가마벽편과 옹기편들이 발견수습된다.4. 유물 : 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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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룡리 3호 요지
1. 성격 : 13,19세기 백자2. 위치 : 38˚09.00N, 127˚54.99E상무룡리 1,2호가 있었다고 추정되는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의 능선 안쪽구릉. 지번상으로 상무룡리 1286유에 해당한다.3. 현상 : 갈수기에만 드러나는 곳으로 호수외의 접수면 능선에서 도침과 가마벽편등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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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룡리 2호 요지
1. 성격 : 조선중기 백자2. 위치 : 38˚09.37, 127˚09.32E파로호로 인해 수몰된 지역. 구 이승만 대통령 별장터. 옛 지명은 허수리. 지번상으로 상무룡리 1274유에 해당된다. 현재는 친구되었으며 상무룡리 1호와 인접해 있다.3. 현상 : 현재 침수지역으로 선편으로 주변에 접근했으나 유물을 수거하지는 못했다. 이 가마에 대해서는 강원도· 강원대학교박물관 『上舞龍里』198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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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룡리 1호 요지
1. 성격 : 조선중기 백자2. 위치 : 38˚09.59N, 127˚54.29E파로호로 인해 수몰된 지역. 구 이승만 대통령 별장터. 옛지명은 허수리로 현재 비번상으로는 상무룡리 1274유에 해당된다.3. 현상 : 현재는 침수됨. 현장에 접근했으나 유물은 수거하지 못했다. 이 가마에 대해서는 강원도 · 강원대학교박물관,『上舞龍里』198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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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리 4호 요지
1. 성격 : 19~20세기 옹기, 백자2. 위치 : 오미리 마을회관에서 갈골천을 따라 600m 오르면 갈골천 오른쪽에 흑연광산 골짜기가 있고 100여m 더 올라가면 옹기가마터가 있다. 위치의 지번은 오미리 497번지에 해당한다.3. 현상 : 지금은 경작지로 가마터 자리만 30여m 흔적이 남아있고 도편은 옹기도편과 자기파편이 섞여 산재해 있다. 주변 토지는 진흙땅으로 이루어졌으며 가마자리는 시커멓게 주변땅과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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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리 3호 요지
1. 성격 : 19~20세기 백자2. 위치 : 38˚10.77N, 127˚53.72E오미리 피모개천을 따라 올라가다가 오른편 경작지 뒷편 구릉으로 하천 맞은편이 도중골입구이다. 지번상으로는 오미리 661-답에 해당한다.3. 현상 : 논 밭으로 경작하고 있어서 자연구릉은 파괴되었으며 남아있는 구릉의 단애에서 유물이 수습된다.4. 유물 : 백자, 청화백자 및 근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백자류가 주종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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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리 2호 요지
1. 성격 : 17~18세기 백자2. 위치 : 38˚10.89N, 127˚58.83E오미리 종점에서 군도 6호선을 따라 1.5km를 가면 안터교가 나오고 다리건너 300m쯤 가면 오른쪽 골이 안터 마을이다. 도로에서 안터전을 따라가다가 손운봉씨 집을 지나 오른쪽이 능골이다. 이곳에서 하천을 따라 약 10분가량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있는 경작하지 않는 밭이 있는데 이 곳이 가마터이다. 지번상으로는 오미리 927전, 928전에 해당한다. 3. 현상 : 경작지로 활용되고 있는 곳으로 경사도는 14˚인데 비교적 자연 경사면은 남아 있다. 그러나 오래전 민가가 있었던 흔적이 있고 현재도 지표에서는 농작이 이루어 지고 있어 부분적인 훼손이 있다. 폭우로 군데군데 진입로와 경사면이 패여 있는데 그 경사면을 따라 도편과 가마폐기물들이 수습된다.4. 유물 : 오목굽에 모래받침을 받친 백자 발, 완, 접시 등이 주류를 이루며 철화백자가 동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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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리 1호 요지
1. 성격 : 정확지 않음2. 위치 : 38˚11.40N, 127˚55.26E3. 현상 : 도로 개설로 이미 파괴된 것으로 보이는데 길을 따라 가마유구의 단면 소토층이 드러나 있다. 주변에 도편은 없으나 가마벽편 등이 있다. 개천의 상류쪽에는 흑연광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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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악리 4호 요지
1. 성격 : 17~20세기 백자2. 위치 : 38˚12.96N, 127˚55.83E금악교를 건너기 전 수입천을 따라 오른편 마을로 들어가면 소위 '골말' 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작은 개천을 따라 올라가다가 양갈래 길에서 오른편의 한성만씨 집 옆과 뒷편의 밭일대. 지번상으로 금악리 408, 409전에 해당됨.3. 현상 : 현재 민가가 있고 민가 옆과 뒤쪽으로는 경작지가 있다. 지표상에 도편과 가마관련 폐기물들이 수습된다. 이미 경작지와 분묘 등으로 일대의 지형이 변경된 것으로 보아 유적은 많이 훼손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4. 유물 : 오목굽에 모래받침 백자류부터 굽 안쪽을 깊게 깎은 유형에 이르기까지 조선후기의 각 시기에 해당하는 백자가 수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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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악리 3호 요지
1. 성격 : 19~20세기 백자2. 위치 : 38˚10.97N, 127˚57.37E금악리 2호 지나 6번 군도를 따라 성곡령으로 올라가다가 거의 정상부 부근에서 왼편으로는 경작지가 있고 오른편으로는 경작지와 잣나무 단지가 나오는 지점으로 도로 바로 왼편 아래쪽사면 일대가 중심이다. 지번상으로는 금악리 85전, 86전, 145임이다.3. 현상 : 31번 군도가 관통하는 지역으로 도로의 아래쪽 사면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도편이 수거되고 있다. 그러나 경사면 바로 위쪽은 평평한 경작지가 있고 그 위가 도로인 점과 현재 도편이 발견되는 지점의 경사가 너무 심해서 도로와 경작지를 개설하면서 퇴적의 윗부분 일부가 깎여 사면으로 흘러내렸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3. 유물 : 작고 낮은 다리굽에 모래받침으로 거의 포개구운 흔적은 없으며 굽까지 전면 시유한 비교적 질 좋은 백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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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악리 2호 요지
1. 성격 : 14~18세기 백자2. 위치 : 38도 11.39N, 127도 56.45E금악리 1호를 지나 성곡령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왼편으로 '샘이깊은 계곡(옛 이름-금강가든)' 이라는 음식점이 나오는데 그 음식점쪽으로 들어서서 작은 개천을 건너 왼편에 보이는 구릉이다. 구릉에는 현재 민묘가 1기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양어장이 있다. 지번상으로는 금악리 116-1전,116임이다.3. 현상 : 구릉의 일부가 남아있고 민묘와 도로,음식점,양어장 등을 개설하면서 이미 훼손이 심한편이다. 다만 구릉의 정상부와 단애면 등 자연퇴적으로 보이는 곳에서 도편과 가마폐기물이 집중적으로 발견되며,주변 일대에는 공사시에 밀려난 것으로 보이는 파편들이 넓게 분포한다. 1개의 구릉에 서로 시기적 차이를 보이는 도편들이 함께 발견되고 있어서 크게 2시기에 걸쳐요업이 이루어졌던 곳으로 생각된다.4. 유물 : 태토비짐받침에 다리굽을 기본으로 하는 고려백자 유형(가)과 오목굽에 모래받침으로 포개구운 조선 후기 유형(나)이 함께 수습된다. 가유형은 녹색이 감도는 유색의 백자로 내저원각 있는 대접과 발,측선이 꺽인 접시,전접시 등이 주종을 이루며(나)유형은 발,완,접시등이 있다. 드물게 청자편이 함께 수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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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악리 1호 요지
1. 성격 : 14~15세기 백자2. 위치 : 38도 11.73N,127도 55.94E金岳橋를 지나 성곡령 방향으로 좌회전 하자마자 왼편에 보이는 구릉의 경작지. 안성암이라는 암자로 들어가는 진입로 왼편이다. 지역인들은 이 곳 일대를 '버덩말' 이라고 부른다. 지번상으로는 금악리465전,산60에 해당한다.3. 현상 : 구릉의 윗부분은 경작지와 민묘로 사용되었고 구릉을 중심으로 주변이 모두 도로가 나있어 이미 상당부분 훼손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작지 표도와주면의 농수로,구릉의남서쪽 아래로 펼쳐진 논과 밭일대 넓은 지역에서 이 가마의 제작품으로 보이는 같은 유형의도편과 가마 폐기물이 수습된다. 현재의 경사도는10도이다.4. 유물 : 유약에 푸른 기가 도는 백자 발, 접시가 대부분이고 제기로 생각되는 것도 있다. 태토비짐받침을 받쳐 구웠다. 대부분은 무문이지만 일부 제기로 보이는 것 가운데 음각,첩화장식을 사용한 것이 있다. 요도구는 원주형 도침,구멍뚫린 받침이 있고 내면에 백토를 바르지 않은 가마벽편이 수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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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리 7호 요지
1. 성격 : 14~15세기 백자2. 위치 : 38°12.62N, 127°58.49E 송현리와 장평리의 경계지역. 460번 지방도로를 따라 방산면으로 들어서서 왼편으로 수입천 너머 장평리와의 인접지에 위치한다. 송현리 5호에서 마을을 지나는 농로를 따라 도보로 15분 정도 가면 왼편에 작은 계곡이 있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박장군묘’ 라고 부르는 묘가 있는데 그 묘를 기준으로 오른편 아래쪽 경사 면 일대가 가마터이다. 지번 상으로는 산 8임에 해당한다.3. 현상 : 현재 잡목이 우거져 하절기에는 접근이 어렵다. 구릉의 위쪽인 무덤 부근에서도 도편이 수습되나 구릉의 하단 부에서 백자편과 가마벽편, 요도구등이 집중적으로 수습된다.4. 유물 : 백자류는 기벽과 釉가 얇고 빙렬 있으며 절요접시, 내저 원각 있 는 깊은 발, 내면이 낮고 낮은 대접, 안굽 등 일반적 고려 후기 의 특징을 보여준다. 가마벽편과 태토비짐 받침도 함께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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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리 6호 요지
1. 성격 : 19~20세기 옹기가마2. 위치 : 38°12.64N, 127°57.12E 460번 지방도로를 따라 방산면으로 들어서서 오른편으로 백석 산 아파트가 있는데 이 아파트를 가로질러 뒤편으로 개울을 건너 50여미터 올라가 오른편 구릉 사면에 위치한다.. 지번 상으로는 송현리 562-1전이다.3. 현상 : 현재는 밭고 논으로 개간되어 도편들이 넓게 흩어져 있다. 구릉과 밭의 경계 부근에서 옹기편과 소토들이 집중적으로 수거 된다.4. 유물 : 대개가 항아리 같은 대형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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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리 5호
1. 성격 : 14~15세기 백자2. 위치 : 38°12.64N, 127°57.12E 460번 지방도로를 따라 방산면으로 들어서서 왼편으로 수입천 너머 장평리와의 인접지에 위치한다. 군에서 관리하는 상수도 관련 시설물과 관리소가 있는데 그 곳으로 가는 진입도로 왼편 에 민가가, 그 뒤편으로 밭과 분묘가 있고, 작은 구릉이 남아 있 는데 그 구릉을 중심으로 하는 일대가 가마터이다. 지번 상으로는 송현리 518전, 519전에 해당한다.3. 현상 : 현재 개간된 밭과 남아 있는 구릉을 중심으로 도편과 가마 벽편 등의 가마 폐기물이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주변을 경작지로 개간 하면서 부분적으로 훼손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가마터 아래쪽의 민가와 그 둘레 경작지에서도 도편과 가마 벽편 등이 수집된다.4. 유물 : 태토는 불순물이 있으나 비교적 희고, 유약은 맑은 녹색이 감도 는 색조를 띤다. 대부분 태토 비짐 받침으로 번조되었으며 맨 아래 놓였던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은 모래를 받쳐 구웠다. 기형 은 내저 원각 있는 발, 접시, 측선이 꺾여 올라간 접시등이 대부 분이고 도침은 원주형이다. 태토와 유색을 제외하면 기형과 받 침, 요도구 등이 고려 시대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한편 이 곳에서는 접시의 굽 바로 위쪽에 印刻으로 ‘예빈시(賓寺)’라고 새겨진 도편이 발견되어 단순한 지방가마는 아니었을 것으로 판 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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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리 4호 요지
1. 성격 : 19-20세기 백자2. 위치 : 38°13.71N, 127°57.06E 백석산 내 백석산 부대 안으로 들어가 ‘희망로’를 따라 올라 가 다가 왼편(남쪽). 송현리3호를 기준으로 볼 때 백석산 부대 입구 쪽으로 더 내려 온 지점이다. 희망로에서 안쪽으로 30미터 거리에 위치한다. 가마터의 남쪽은 계곡으로 물이 흐르게 되어 있으며 경사져 내려 간다. 송현리 2,3호와 마찬가지로 4호도 같은 계곡을 끼고 있는 경사 면에 각각 운영되었던 비슷한 시기의 가마인 것으로 추정된 다. 지번상으로 송현리 704전에 해당한다.3. 현상 : 퇴적물들이 보이는 곳을 정점으로 계곡을 향해 아래로 경사진 지 형이다. 숲이 우거지고 군 부대 안쪽이어서 훼손이 덜 된 것으로 추정되 나 주변에 인위적으로 건물을 세우거나 지반을 다지기 위해 구 축한 것으로 보이는 석축이일부에 남아 있어서 이미 훼손 되었 을 가능성도 있다.4. 유물 : 백자, 청화백자 발, 접시, 잔 등이 주류를 이루지만 인근의 송현 리 1,2,3호와는 달리 盒, 壺, 뚜껑등과 같은 특수 용기들이 많고 형태도 비교적 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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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리 3호 요지
1. 성격 : 19-20세기 백자2. 위치 : 38°13.71N, 127°57.06E 백석산 내 백석산 부대 안으로 들어가 ‘희망로’를 따라 올라 가 다가 왼편(남쪽). 송현리 2호를 기준으로 볼 때 백석산 부대 입구 쪽으로 더 내려 온 지점이다. 희망로에서 안쪽으로 30-40미터 거리에 위치한다. 가마터의 남쪽은 계곡으로 물이 흐르게 되어 있으며 경사져 내려 간다. 지번상으로 송현리 1000임에 해당한다.3. 현상 : 군부대 내에 위치하여 비교적 훼손이 적은 편이나 부분적으로는 참호 등을 구축하면서 패여진 듯한 구덩이가 있다. 상당히 많은 양의 도편과 가마 벽편 등이 쌓여 있는데 현 퇴적 위치가 가마의 윗부분일 것으로 추정된다. 4. 유물 : 발, 완, 접시, 항아리 등 주로 무문의 백자류와 간단한 ‘壽’‘福’자 청화문양이 있다. 모래받침에 굽 내저를 깎는 유형이 대부분이 다. 특히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진사백자가 요지에서 출토되어 주 목된다. 구전에 의하면 인근에 朱土광산이 있었다고 하여 상관관계가 있 을 가능성도 있다.
상무룡리 8호 요지
작성자방산자기박물관
등록일2006-11-28 17:22:21
조회수3034
첨부파일
꾸미기_상무룡리 8호 요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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